안해 몸
들고 나는 밀물에
배 떠나간 자리야 있스랴.
어질은 안해인 남의 몸인 그대요
아주, 엄마 엄마라고 불니우기 전(前)에.
굴뚝이기에 연기(煙氣)가 나고
돌바우 아니기에 좀이 들어라.
젊으나 젊으신 청하늘인 그대요,
착한 일 하신 분네는 천당(天堂) 가옵시리라.
애모(愛慕)
왜 아니 오시나요.
영창(映窓)에는 달빛, 매화(梅花)꽃이
그림자는 산란(散亂)히 휘젓는데.
아이. 눈 꽉 감고 요대로 잠을 들자.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소리
물나라의 영롱(玲瓏)한 구중궁궐(九重宮闕), 궁궐(宮闕)의 오요한 곳,
잠 못 드는 용녀(龍女)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소리.
어두운 가슴속의 구석구석……
환연한 거울 속에, 봄 구름 잠긴 곳에,
소솔비 내리며, 달무리 둘려라.
이대도록 왜 아니 오시나요. 왜 아니 오시나요.
어버이
잘 살며 못 살며 할 일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나니,
바이 죽지 못할 것도 아니지마는
금년에 열 네 살, 아들딸이 있어서
순복이 아버님은 못 하노란다.
어인(漁人)
헛된 줄 모르고나 살면 좋와도!
오늘도 저 넘에 편(便)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 척(隻) 길 떠났다고.
작년(昨年)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金)모래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엄숙
나는 혼자 뫼 위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볕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傷處)받은 맘이여
맘은 오히려 저프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두 느끼면서.
여름의 달밤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 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 밤이여
그지없이 거룩한 하늘로써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 내려라.
행복(幸福)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福)받았어라.
뻗어 뻗어 오르는 가시덩굴도
희미(稀微)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煙氣)에 멱감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 들어라.
우긋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永遠)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 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銀) 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잣추는 향기(香氣)를 두고 가는데
인가(人家)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 종일(終日)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農夫)들도 편안(便安)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득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밭 가운데의 우물 물가에는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宇宙)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의 넘는 곡조(曲調)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 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情熱)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靑春)은
서늘한 여름 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農村)에서 지나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人間)에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기울이며
흰달의 금물결에 노(櫓)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讚揚)하여라 좋은 한때를
흘러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幸福)을.
여름의 어스러한 달밤 속에서
꿈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여수(旅愁)
一
유월(六月) 어스름 때의 빗줄기는
암황색(暗黃色)의 시골(屍骨)을 묶어 세운 듯,
뜨며 흐르며 잠기는 손의 널쪽은
지향(指向)도 없어라, 단청(丹靑)의 홍문(紅門)!
二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다 보자니 눈물겨워라!
조그마한 보드라운 그 옛적 심정(心情)의
분결 같던 그대의 손의
사시나무보다도 더한 아픔이
내 몸을 에워싸고 휘떨며 찔러라,
나서 자란 고향(故鄕)의 해 돋는 바다요.
여자(女子)의 냄새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 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 어즐이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
어우러져 비끼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葬事) 지나간 숲속의 냄새.
유령(幽靈) 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 둔덕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열락(悅樂)
어둡게 깊게 목메인 하늘.
꿈의 품속으로써 굴러나오는
애달피 잠 안오는 유령(幽靈)의 눈결.
그림자 검은 개버드나무에
쏟아져 내리는 비의 줄기는
흐느껴 비끼는 주문(呪文)의 소리.
시커먼 머리채 풀어헤치고
아우성하면서 가시는 따님.
헐벗은 벌레들은 꿈틀일 때,
흑혈(黑血)의 바다. 고목(枯木) 동굴(洞窟).
탁목조(啄木鳥)의
쪼아리는 소리, 쪼아리는 소리.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옛낯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후(後)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러한 등(燈)불에 밤이 오면은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만한 세상(世上)을 보냈습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前)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워 두었던
옛이야기뿐만은 남았습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白楊)의 뻗은 가지에
전(前)에 없이 흰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던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便) 하늘 아래서 평화(平和)롭건만.
새들게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써 오는지 종경 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吊曲)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살음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의 깊은 근심이
오도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이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윈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리운 머리카락들은
걸음 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往十里) 건너가서 울어나 다오,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山)마루에 걸려서 운다.
이바루
외따로 와 지나는 사람 없으니
밤 자고 가자 하며 나는 앉어라.
저 멀리, 하느편(便)에
배는 떠나 나가는
노래 들리며
눈물은
흘러나려라
스르르 내려 감는 눈에.
꿈에도 생시에도 눈에 선한 우리 집
또 저 산(山) 넘어 넘어
구름은 가라.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베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동달이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갯머리에
죽쟈 사쟈 언약도 하여 보았지.
봄 메의 멧기슭에
우는 접동도
내 사랑 내 사랑
조히 울 것다.
두동달이베개는
어디 갔는고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달빛은 밝고 귀뚜라미 울 때는
우둑히 시멋 없이 잡고 섰던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여, 오오 오늘밤
그대 찾아 데리고 서울로 가나?
집을 떠나 먼 저곳에
외로이도 다니던 내 심사(心事)를!
바람불어 봄꽃이 필 때에는,
어째타 그대는 또 왔는가,
저도 잊고 나니 저 모르던 그대
어찌하여 옛날의 꿈조차 함께 오는가.
쓸데도 없이 서럽게만 오고 가는 맘.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 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心事)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물 고운 자주(紫朱) 구름,
하늘은 개여 오네.
밤중에 몰래 온 눈
솔숲에 꽃피었네.
아침볕 빛나는데
알알이 뛰노는 눈
밤새에 지난 일은……
다 잊고 바라보네.
움직거리는 자주(紫朱) 구름.
마소의 무리와 사람들은 돌아들고, 적적(寂寂)히 빈 들에,
엉머구리 소리 우거져라.
푸른 하늘은 더욱 낫추, 먼 산(山)비탈길 어둔데
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
볼수록 넓은 벌의
물빛을 물끄럼히 들여다보며
고개 수그리고 박은 듯이 홀로 서서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온 것을 아주 잊었어라, 깊은 밤 예서 함께
몸이 생각에 가볍고, 맘이 더 높이 떠오를 때.
문득, 멀지 않은 갈숲 새로
별빛이 솟구어라.
부옇한 하늘, 날도 채 밝지 않았는데,
흰눈이 우멍구멍 쌓인 새벽,
저 남편(便) 물가 위에
이상한 구름은 층층대(層層臺) 떠올라라.
마을 아기는
무리 지어 서제(書齊)로 올라들 가고,
시집살이하는 젊은이들은
가끔가끔 우물길 나들어라.
소삭(蕭索)한 난간(欄干) 위를 거닐으며
내가 볼 때 온 아침, 내 가슴의,
좁혀 옮긴 그림장(張)이 한 옆을,
한갓 더운 눈물로 어룽지게.
어깨 위에 총(銃) 매인 사냥바치
반백(半白)의 머리털에 바람 불며
한번 달음박질. 올 길 다 왔어라.
흰눈이 만산편야(滿山遍野)에 쌓인 아침.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津頭江)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山) 저 산(山)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산(山)에나 올라서서
바다를 보라
사면(四面)에 백(百) 열리(里), 창파(滄波) 중에
객선(客船)만 둥둥…… 떠나간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 그 어디메냐
향안(香案), 향합(香盒), 대그릇에,
석양(夕陽)이 산(山)머리 넘어가고
사면(四面)에 백(百) 열리(里), 물소리라
젊어서 꽃 같은 오늘날로
금의(錦衣)로 환고향(還故鄕)하옵소사.
객선(客船)만 둥둥…… 떠나간다
사면(四面)에 백(百) 열리(里), 나 어찌 갈까
까투리도 산(山) 속에 새끼치고
타관만리(他關萬里)에 와 있노라고
산(山) 중만 바라보며 목메인다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고
들에나 내려오면
쳐다 보라
해님과 달님이 넘나든 고개
구름만 첩첩……떠돌아간다
퍼르스렷한 달은, 성황당의
데군데군 헐어진 담 모도리에
우둑히 걸리웠고, 바위 위의
까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엉긔한 무덤들은 들먹거리며,
눈 녹아 황토(黃土) 드러난 멧기슭의,
여기라, 거리 불빛도 떨어져 나와,
집 짓고 들었노라, 오오 가슴이여
세상은 무덤보다도 다시 멀고
눈물은 물보다 더 더움이 없어라.
오오 가슴이여, 모닥불 피어 오르는
내 한세상, 마당가의 가을도 갔어라.
그러나 나는, 오히려 나는
소리를 들어라, 눈석이물이 씨거리는,
땅 위에 누워서, 밤마다 누워,
담 모도리에 걸린 달을 내가 또 봄으로.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하며
마치 천리만리(千里萬里)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여 볼까.
한줄기 쏜살같이 뻗은 이 길로
줄곧 치달아 올라가면
불붙는 山의, 불붙는 山의
연기(煙氣)는 한두 줄기 피어올라라.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 지고 잎 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中)에 헤여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웠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나쁜 일까지라도 생(生)의 노력(努力),
그 사람은 선사(善事)도 하였어라
그러나 그것도 허사(虛事)라고!
나 역시(亦是) 알지마는, 우리들은
끝끝내 고개를 넘고 넘어
짐 싣고 닫던 말도 순막집의
허청(虛廳)가, 석양(夕陽)손에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평양(平壤)에 대동강(大同江)은
우리 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람이지요
삼천리(三千里) 가다 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三角山)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 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春香)과 이도령(李道令)도 살았다지요
이편(便)에는 함양(咸陽), 저편(便)에 담양(潭陽),
꿈에는 가끔가끔 산(山)을 넘어
오작교(烏鵲橋) 찾아 찾아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南原) 땅에는
성춘향(成春香)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우리 집 뒷산(山)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山)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여운 이 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불현듯
집을 나서 산(山)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身勢)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아주 나는 바랄 것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나 띄워서 보낼밖에.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좀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니.
예전에 지나 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을진댄!
물가의 닳아져 널린 굴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득어득 저문 날을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기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밤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 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燈)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稀微)한 하느편(便)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하고, 더 안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山). 산(山)절의 절 종(鍾)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해가 산(山)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山)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저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 한테로 가우리다.
오오, 나의 애인(愛人)이었던 당신이여.
황촉(黃燭)불, 그저도 까맣게
스러져 가는 푸른 창(窓)을 기대고
소리조차 없는 흰 밤에,
나는 혼자 거울에 얼굴을 묻고
뜻없이 생각없이 들여다보노라.
나는 이르노니, 우리 사람들
첫날밤은 꿈속으로 보내고
죽음은 조는 동안에 와서,
별(別) 좋은 일도 없이 스러지고 말어라.
홀로된 그 여자(女子)
근일(近日)에 와서는 후살이 간다 하여라.
그렇지 않으랴, 그 사람 떠나서
이제 십년(十年), 저 혼자 더 살은 오늘날에 와서야……
모두다 그럴듯한 사람 사는 일레요.
어버이님네들이 외우는 말이
딸과 아들을 기르기는
훗길을 보자는 심성(心誠)이로라..
그러하다, 분명(分明)히 그네들도
두 어버이 틈에서 생겼어라.
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
손들어 가르치던 먼 훗날에
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
한결같이 외우는 말이
훗길을 두고 가자는 심성(心誠)으로
아들딸을 늙도록 기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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