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기선이 떠나고 난 항구에는
끊어진 테잎들만 싱겁게 구을리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바다는 다시 침묵을 쓰고 누웠다
마녀의 불길한 예언도 없었건만
건너기 어려운 바다를 사이에 두기로 했다
마지막 말을 삼키고 ---
영영 떠나보내는 마음도 실은 강하지 못했다
선조 때 이 지역은 저주를 받은 일이 있어
비극이 머리들기 쉬운 곳이란다
검푸른 칠월의 바닷가 모랫불 -
늙은 소라껍데기 속엔 이야기 하나가 더 불었다
물을 차는 제비처럼 가벼웠으면 --- 하나
마음의 마음은 광주리 속을 자꾸 뒤적거려
바다 저편에 한여름 흰 꿈을 새우다
춘향
검은 머리채에 동양여인의 '별'이 깃들이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실라우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탁탁 치고 꼭교하면 오실라우
계집의 높은 절개 이 옥지환과 같을 것이오 천만 년이 지나간들
옥빛이야 변할납디어'
옥가락지 우에 아름다운 전설을 걸어놓고
춘향은
사랑을 위해 형틀을 졌다
옥 안에서 그는 椿꽃보다 더 짙었다
밤이면 삼경을 타 초롱불을 들고 향단이가 찾았다
춘향 '야이 향단아 서울서 뭔 기별 업디야'
향단 '기별이라우? 동냥치 중에 상동냥치 돼 오셨어라우'
춘향 '야야 그것이 뭔 소리라냐 --
행여 나 없다 괄세 말고 도련님께 부디 잘해 드려라'
무릇 여인 중
너는
사랑할 줄 안
오직 하나의 여인이었다
눈 속의 매화 같은 계집이여
칼을 쓰고도 너는 붉은 사랑을 �어버리지 않았다
한양 낭군 이도령은 쑥스럽게
'사또'가 되어 오지 �아도 좋았을 게다
춘분
한고방 재어놨던 석탄이 휑하니 나간 자리
숨었던 봄이 드러났다
얼래 시골은 지금 뱀 나왔갔늬이
남쪽 계집아이는 제 집이 생각났고
나는 고양이처럼 노곤하다
秋風에 부치는 노래
가을 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소리가 들려옵니다
왠일입니까
내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밤을 도와 하게 하시오
聰氣는 늘 지니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금싸라기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 없어집니다
이것을 잠가둘 상아궤짝도 아무것도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낙옆이 내창을 두드립니다
차시간을 놓친 손님모양 당황합니다
어쩌자고 신은 오늘이사 내게
청춘을 이렇듯 찬란하게 펴 보이십니까
秋聲
푸라타나쓰의 표정이 어느 틈에 이렇게 달라졌나
하늘을 쳐다본다
청징한 바닷가에 다시 은하가 맑다
눈을 땅으로 떨어뜨리며
내가 당황하다
村景
구릿빛 팔에 쇠스랑을 잡고
밭에 들어 검은 흙을 다듬는 낫
보기 좋게 낡은 초가집 영마루엔
봄이 나른히 기고 -
울파주 밖으론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웃는다
窓邊
서리 내린
지붕 지붕엔 밤이 앉고
그 안엔 꽃다운 꿈이 딩굴고
뉘 집인가 창이 불빛을 한입 물었다
눈비탈이
하늘 가는 길처럼 밝구나
그 속에 숱한 얘기들을 줍고 있으면
어려서 잊어버린 '집'이 살아났다
창으로 불빛이 나오는 집은 다정해
볼수록 정다워
저 안엔 엄마가 있고
아버지도 살고
그리하여 형제들은 多幸하고--
마음이 가난한 이는 눈을 모아
고운 정경을 한참 마시다---
아늑한 '집'이 온갖 시간에 빌려졌다
친정엘 간다는 새댁과 마주앉은
급행열차 밤찻간에서도
중년신사는 나비넥타이를 찾고
유복한 부인은 물건을 온종일 고르고
백화점소녀는 피곤이 밀린 雜沓 속에서도
또 어느 조고만 집 명절 떡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댈 데 없는 외로움이 박쥐처럼 퍼덕이면
눈감고
가다가
슬프면 하늘을 본다
참음
이 가슴 맺힌 울분 불꽃 곧 될 양이면
日月도 녹을 것이 산악 어이 아니 타랴
오늘도 내 맘만 태며 또 하루를 보냈노라
님이 가오실 제 명심하란 참을 忍字
오늘도 가슴속 치미는 불덩이를
참음의 더운 눈물로 구지껏 사옵내다
콩 한 알은 황소 한마리
비둘기가 아니라도
콩이 좋아
꼭 찍은 五等 콩밥에 노오라니 백인 걸
빠꿈빠꿈 빼먹으면
보리밥 덩어리가 보기 좋게 얽는다
이 안의 콩 한알은 밖의 황소가 한마리란다
소금을 설탕인 양 맛있게 먹는 족속들이 있다
캐피탈 웨이
샅샅이 드러내놓는
대낮은 告發者
눌러보고 싸주어 아름답게만 보아주는
밤은 여인
시속 15마일의 안전상태로
나 이 밤에 캐피탈 웨이를 달린다
낮에 낙엽을 줍던 이도 안 보이고
다람쥐처럼 옹송거리고 밤을 굽던 소년도 그 자리에 없다
하나 좋은 줄 모르고 날마다 오르나린 이 길이
오늘밤 유난히 멋지고 곱구나
몇백 환 택시의 효과여
가로수를 양옆에 끼고
鋪道를 미끄러지는 맛이 괜찮구나
보초 대신 칸칸이 늘어선
나의 수박등들의 아름다움이여
개 짖는 집 하나 없는 이 골목을
난 이제 조심조심 들어가야 한다
남의 집 급한 바느질을 하는 모퉁이집 할머니를 위해서
시린 손을 불며 과자봉지를 붙이는 반장아저씨를 위해서
기침도 삼키고 나는 근신하며 들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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