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願頌

하늘은 곱게 타고 양귀비는 피었어도
그대일래 서럽고 서러운 날들
사랑은 괴롭고 슬프기만 한 것인가
사랑의 가는 길은 가시덤불 고개
그 누구 이 고개를 눈물없이 넘었던고
영웅도 호걸도 울고 넘는 이 고개
기어이 어긋나고 짓궂게 헤어지는
운명이 시기하는 야속한 이 길
아름다운 이들의 눈물의 고개
영지못엔 오늘도 탑그림자 안 비치고
아사달은 뉘를 �아 못 속으로 드는 거며
그슬아기 아사녀의 이 한을 어찌 푸나


 
봄의 서곡

누가 오는데 이처럼들 부산스러운가요
목수는 널판지를 재며 콧노래를 부르고
하나같이 가로수들은 초록빛
새옷들을 받아들었습니다

선량한 친구들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집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더 야단입니까
나는 鋪道에서 현기증이 납니다

삼월의 햇볕 아래 모든 이지러졌던 것들이 솟아오릅니다
보리는 그 윤나는 머리를 풀어헤쳤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붙잡고 속삭입니다

어디서 종다리 한 놈 포루루 떠오르지 않나요
꺼어먼 살구남기에 곧
올연한 분홍「베일」이 씌워질까봅니다



봄비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로
밤새것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즐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별을 쳐다보며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더 높은 자리에 있어본댔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댔자
또 미운놈을 혼내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 무엇입니까

술 한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밤중

도적고양이가 기왓장을 살포시 딛는 시각
나는 왜 눈이 뜨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눈을 꺼벅거려도 한방듸는 어둠만
눈으로 입으로 들어올 뿐이다

벌레들 우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
숱한 젊은이들의 정령의 소리도 같다

첫닭이 운다
어디서 지금쯤 유다의 후예는 또
내일 아침 제 장사를 삼십 은전보다 더 싼값으로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지도 모른다

동이 트려면 아직도 멀었나보다
나는 어둠을 헤치러 나가는
자꾸 바닷물처럼 들이킨다



박쥐

기인 담 밑에 옹송그리고 누워 있는 집 없는 아이들
바람이 소스라치게 기어들 때마다
강아지처럼 응응대며 서로의 체온을 의지한다

박쥐의 날개를 얼리는 밤 -
청동화롯가엔 두 모녀의 이야기가
찬 재를 모으고 흩으며 잠들 줄 모른다

아들의 굳게 다문 입술을 떨리며
눈물을 삼키고 떠나던 밤  - 그 밤의 광경이
어머니의 가슴엔 아프게 새겨졌다

해가 바뀌는 밤 늙은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눈물짓다

젊은이가 떠난 뒤 이런 밤이 세번째
같은 하늘 낯선 땅 한구석에선
조국을 원망하나 미워하지 못하는
情의 칼에 어여지는 아픈 가슴이 있으리----



바다에의 향수
 
기억에 잠긴 남빛 바다는 아드윽하고
이를 그리는 정열은 걷잡지 못한 채
낯선 하늘 머언 뭍 우에서
오늘도 떠가는 구름으로 마음을 달래보다

지금쯤 바다 저편엔 칠월의 태양이 물 우에 빛나고
기인 항해에 지친 배의 육중스런 몸뚱이는
집시--의 퇴색한 꿈을 안고 푸른 요 우에 뒹굴며
�익은 섬들의 기억을 뒤적거리며........

푸른 밭을 갈아 흰 이랑을 뒤에 남기며
장엄한 출범은 이 아침에도 있었으리........

늠실거리는 파도--- 바다의 호흡--- 흰물새---
오늘도 내 마음을 차지하다--
 


시인에게
 
일찍이 그대
帝王이 부럽지 않음은
어떤 세력에도 굽힘없이
네 붓대 곧고 엄해
총칼보다 서슬이 푸르렀음이어라
독기 낀 안개 자욱히 날빛을 가리고
밤도 아니요 낮도 아닌 상태에서
사람들 노상 지치고
예저기 썩는 냄새 코를 찔러
웃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들 고개 돌릴 제
시인
오늘 너는 무엇을 하느냐

권력에 아첨하는 날
네 冠은 진땅에 떨어지나니
네 성스러운 붓대를 들어라
네 두려움 없는 붓을 들어라
정의 위해
횃불 갖고 시를 쓰지 않으려느냐



슬픈 그림

보랏빛 포도알처럼 떫은 풍경 -

애드벌룬은 「아담과 이브시대」의 사전예고다
아스파라가스처럼 늘 산뜻한 걸 즐기는 시악씨
오얏나무 아래서 차라리 낮잠을 잤다

바느질 대신 아프리카종의 고양이를 데리고 논다
구두를 벗고 파초잎으로 발을 싸본다

허나 시악씨는 문득 무엇이 생각킬 때면
붉은 산호 목걸이도 벗어던지고
아무도 달랠수 없아 울어버리는 버릇이 있단다



수수 깜부기

깜부기는 비가 온 뒤라야 잘 팼다
아이들이 깜부기를 찔러
참새떼처럼 수수밭으로들 밀려갔다

밭고랑에 가 들어가
꼭대기를 쳐다본다
희끗 깜부기를 찾아내는 때는
수숫대는 사정없이 휘며 숙여졌다

깜부기를 먹고 난 입은
까암해 자랑스러웠다



소녀

「어디를 가십니까」

노타이 청년의 평범한 인사에도
포도주처럼 흥분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머지않아 아가씨 가슴에도
누가 산도야지를 놓겠구려



城址

머루와 다래가 나는 산골에 자란 큰애기라
혼자서 곧잘 산에 오르기를 좋아합니다

깨어진 기와편에서 성터의 옛얘기를 주우며
입다문 석문에 삼켜버린 전설을 바랍봅니다

하늘엔 흰구름이 흘러 흘러가고 -
젊은이의 가슴은 애수가 지그읏이 무는 가을
서반아풍의 기인 머리를 땋아 두른
여인은 지나간 꿈을 뒤적거립니다

실은 서럽지도 않은 이야기들인 것이
저 벌레와 함께 이처럼 울고 싶어집니다

하기사 그때도 이렇게 갈 - 대가 우거지고
들국이 핀 언덕 -
동으로 낮차가 달리는 곳 -
두 줄 철로를 말없이 말없이 바라보았지라우 -



성묘

어찌타 가시는 님
정은 남겨두신고
가배절 당하오니
옛설움 새로워라

쓰린 마음 굳이 안고
누우신 곳 �았건만
애닯다 어이 몰라 하신고
키 큰 풀 우거진 양
더욱 쓸쓸하고야
간장에 맺힌 설움
풀 길이 바이 없어
더운 눈물 뿌려
마른 잎을 축이노라

온 것조차 모르시니
애닯은 이 마음이랴
눈 들어 먼 산 보니
안개 어이 가리는고
발밑의 흰 떨기도
눈물 젖어 있더라



설중매

송이 송이 흰빛 눈과 새워
소복한 여인모양 고귀하여
어둠 속에도 향기로 드러나
아름다움 열꽃을 제치는구나

그윽한 향 품고
제철 꽃밭 마다하며
눈 속에 만발함은
어늬 아낙네의 매운 넋이냐




생가

뒤울안 보루쇠 열매가 붉어오면
앞산에서 뻐꾸기 울었다

해마다 다른 까치가 와 집을 짓는다던
앞마당 아라사버들은 키가 커 늘 쳐다봤다

아랫말과 웃동리가 넓어 뵈던 촌에선
단오의 명절이 한껏 즐겁고 ---

모닥불에 강냉이를 구워먹던 아이들
곧잘 하늘의 별 세기를 내기했다

강가에서 갯(江)비린내가 유난히
풍겨오는 저녁엔 비가 온다던
늙은이의 천기예보는 틀린 적이 없었다

도적이 들고 난 새벽녘처럼 호젓한 밤
개 짖는 소리가 덜 좋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묻히는 밤이 있었다



山念佛

산염불소리 꺽이어 넘어가면
커-단히 떠오르는 얼굴 있어
우정 산염불 틀어놓고는
우는 밤이 있어라

비인 주머니하고 풀 없이 다니던 일
쩌릿하니 가슴에다 못을 친다

지금쯤 어늬
쥐도 새끼를 안 친다는 그 땅광에서
남쪽 하늘 그리며
큰눈 꺼벅이고 있는지
겁먹은 눈을 뜬 채 또 쓰러져버렸는지-



산딸기

나는 나는 산색시
산에 여(實)노라
붉게 타다 못해
검게 질리며
나는
산에 산에 여노라

눈이 영롱함은 눈물에 젖은 탓
산새도 못 오게
가시 돋치고
山峽의 긴 긴 해를
송이 송이
붉게 타노라



사월의 노래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 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픈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랑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열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러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굴의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사슴의 노래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도무지 나는 울 수 없고
사자같이 사나울 수도 없고
고운 생각으로 진여 씹을 것은 더 못 되고
희랍적인 내 별을 거느리고
오직 죽음처럼 처참하다

가슴에 꽂았던 장미를 뜯어버리는
슬픔이 커 喪章같이 처량한 나를
차라리 아는 이들을 떠나
사슴처럼 뛰어다녀보다

고독이 城처럼 나를 두르고
캄캄한 어둠이 어서 밀려오고
달도 없어주

눈이 나려라 비도 퍼부어라
가슴의 장미를 뜯어버리는 날은
슬퍼 좋다
하늘에 불이 났다
하늘에 불이 났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그러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업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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